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가장 크게 변한 것 중에 하나가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구분이 모호해졌다는 것이다.


너도 나도 전문가인 시대이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누구든 어느 분야에서든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고,

조금의 가공을 통해서 '그럴듯한' 완성품을 선보일 수 있다.


이는 곧 권위의 추락으로 이어졌다.


가장 알기쉬운 예로 영화판을 살펴보자.





유명한 사건이다.

바로, 허지웅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사건

원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나쁜 질의 화폐(가령 불순물 섞인 합금)의 유통이 좋은 질의 화폐(순금)을 사라지게 만든다'는 

경제학에서 곧잘 쓰이는 이야기다


중요한건, 오래된 문장이다 보니 한자도 지랄 맞게 구축(驅逐, 몰아내다)이라는 실생활에서 잘 안쓰는 한자어가 사용된다는 것.

허지웅은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구축(構築, 뭔가를 짓다, 세운다는 뜻)의 뜻으로 사용을 했다가

방송 후 시청자들의 비난(이라 쓰고 놀림감)을 들은 것이다.


사실 그렇게 욕먹을 일도 아닌데...

모를 수도 있고, 꼭 구축을 構築로 써서 이어간 내용자체는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원래 인터넷 판이 그렇듯이, 주야장천 놀려먹은 것이다. 







나는 이게 TV에 나와서 '전문가' 행세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사람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거부감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별거 아닌 것 같은 내용, 나도 다 알고있다고 생각하는 내용들을

엄격 진지 근엄한 표정으로 헛소리를 하는 티비 속 전문가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대중들은 평론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제로 전문가(?)만큼, 또는 전문가를 뛰어넘는 실력을 보이는 아마추어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만화가 김풍은 요리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현역 쉐프들으 제치고 최다승을 질주중이다.

몇년 전에는 야매 요리라는 놀림감 소재였던 그 김풍이 말이다.

그러면 또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셰프? 별거 아니네...?'






일반인들은 냉부해를 찍을 수 없으니까 영화판에서 활약한다.

바로 10글자 20글자 영화평이다.









요즘 포털이나 영화사이트의 일반인 평론을 보면 

사용되는 단어들이 죄다 어디 신화관련 서적이나, 철학책에서 나올 법한 것들이다.

영화팬들은 그들이 그토록 비웃고 조롱했던 평론가들의 글을 따라하고 있는 것이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난 솔직히 위 평론들의 반은 뭔 말인지 어려워서 이해도 못하겠다.

분명 본 영화인데도.





그럼 위의 아저씨같은 평론가는 더이상 필요가 없는 존재인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김풍이 냉부해에서 1등을 아무리 많이 해도, 그가 지금당장 식당을 차려서 수십명의 직원을 관리하고, 메뉴를 개발하는 일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네티즌이 촌철살인 10자평을 써도, 200자 원고지 30-40장을 말이 되도록 채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평론가는 여전히 유효하다

누구나 음식을 먹고, 그 맛을 평가하기는 쉽지만,

그 기저에 얽힌 역사와 유래를 연구하고 해석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평론가란 타이틀을 달면 적어도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해서는 빈틈이 없어야 한다.



시덥잖은 음식에 대한 평가라 해도

황교익의 말이 권위를 얻는 것은, 그의 전문성에 대한 일반인들의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평론가의 귄위가 떨어진 것은

평론가 자신들이 자처한 점이 가장 크다.


인터넷이 평론가의 위기를 불러온 시발점인 것은 사실이지만,

전문분야가 아닌 곳에 발을 디디고, 

TV에 나와서 알 수 없는 헛소리를 하고

결국 자신의 전문분야마저 위태롭게 만든 것은 평론가 자신들이다.

평론가는 필요한 존재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답해야 할 것도 평론가 자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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